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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르는 채 그렇게 싸워 왔다. 단지 초일은 자신을 살려 주고 밥을 주는 정이면에게 무언가

로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.그것은 그가 책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. 그래서 정이

면이 시키는 일이라면 군말 없이 다 했다. 언제나 정이면은 초일보다는 약간 강한 상대만

을 골랐고, 초일에 비해 상대가 약하다 싶으면 숫자로 맞추었다. 그렇기에 초일은 언제나

죽지 않을 만큼 상대와 싸워 왔으며 한 번의 사투(死鬪)가 끝나면 여지없이 침상에 누웠다.

“이것은 혈정(血精)이라는 것으로 피를 맑게 해주며 다시 새 살을 돋게 해주는 영약이니,

네 몸에는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.”정이면은 상처와 출혈로 쓰러져 있는 초일을 데리고 와

서 매번 작은 호로병에 들어 있는 짙은 혈향(血香)의 붉은 액체를 초일에게 먹였다. 혈정의

약효 때문인지 초일은 길게는 일 주일, 짧게는 이삼 일 후에 눈을 뜨곤 했다.눈을 떴을 때,

초일의 상처는 자국만을 남기고 멀쩡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. 그리고 시간이 지

날수록 담금질을 하듯 그의 몸과 마음은 가벼워져 갔다.정이면은 기분이 좋았다. 자신의 제

자가 이제 짐승과의 대결에서 벗어날 때가 왔기 때문이다. 사람이 커 가는 모습을 보는 것

이 기분 좋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,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것이 아쉬웠다.이것이 삶의 낙이

라는 사실에 그는 마음으로 훈훈한 미소를 머금고 자신의 제자를 바라보았다. 비록 표정에

는 그런 마음과 정반대의 냉막한 표정이 드리워져 있을 뿐이었지만……. 그리고 처음으로

제자와 검을 맞대는 대련을 시작했다.”네가 나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혼(魂)이 없기 때문

이다. 네 검에는 오직 살(殺)이라는 일념뿐이구나, 그것이 그동안에 배운 진실일지도 모른

다.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. 혼을 담아라,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앞으로 네 검에 혼을

담는다는 생각으로 검을 들어야 할 것이다. 혼을 담아 그냥 베는 것이다. 앞에 그 어떤 장애

물이 있다 하여도 벨 수 있다는 집념(執念)과 네 혼을 담아서! 그것이 네 검이다!”초일은 정

이면의 말을 조용히 귀담아들었다. 혼을 담으라는 이야기는 이해하기 힘드나 이해하려고

노력했다. 자신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초일이었기에 노력해야

한다고 생각했다. 그런 마음가짐으로 인해 그나마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믿고 있는 그였다.

“내가 오늘 너와 대련한 이유를 알고 있느냐?””잘 모르겠습니다.”정이면은 공손한 초일의